간송미술관에 대한 불편한 진실

간송미술관. 꽤 오랜 기간 동안 간송미술관만 생각해도 마음이 벅차오르고 자랑스러웠더랬다. 간송미술관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1906~62) 선생이 일제시대 한국의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거나 관리되지 않는 사실이 안타까워 사재를 털어 훈민정음 해례본과 고려청자 등 국보급 문화재들을 사들여 만든 미술관으로 나라와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깃들여 있는 곳이다. 심지어 간송 선생과 그 일가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문화재가 잘못될까 보화각을 지켰다고 한다.

이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등을 이유로 1년에 봄과 가을 2차례만 외부에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회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에 대한 설레임과 간송 선생 일화에 대한 벅찬 감정 등을 안고 길게 줄을 서서 30분이고, 한시간이고 기다렸다가 관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문화재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먼 지인을 통해서 그 분은 간송미술관을 가지 않는 다는 얘길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문화재 관리 실태가 너무나 부실해서 마음이 아파서 못 본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작년 국정감사에서는 아래와 같은 지적이 있었다.

…10여 년 전에 수장고를 들어가 봤던 한국미술계의 거목 故 진홍섭 前 이화여대 박물관장은 제자들에게 “큰일이야! 큰일! 다 썩었어.”라면서 “간송측에 전적, 회화 관리 상태가 열악해 손질, 소독을 제안했으나 간송에서 거부했다.”고 목격한 장면을 설명한 바 있다.   또한 2008년 70주년 기념전을 관람한 한 언론인은 정약용의 ‘다산심획’ 첩 중간 부분이 너덜너덜 벗겨지고 심한 얼룩자국이 있었다고 언론에 기고를 했고, 2009년 겸재 서거 250주년전을 관람한 한 한국화가는 “겸재 정선의 ‘필운대’ 진열관 내부에 살아있는 벌레가 들어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

간송미술관. 간송 선생은 아직 주권을 찾지 못한 나라와 그 유구한 역사와 그를 바탕으로 한 문화재의 보존을 원했을 것이다. 그래서 훗날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았을 때 국민들이 그 문화재를 보면서 “아, 우리나라가 정말 위대한 나라구나. 엄청난 문화를 일궈낸 민족이구나.”를 느끼길 바랬을 것이다.

현재의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청이 실태조사를 요구해도 거부할 정도로 폐쇄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모든 문화재를 문화재청과 협의해 제대로 보존 관리를 해주길 바란다.

* 개인적으로는 간송미술관이 모든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간송 특별관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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