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살인 사건과 사회적 책임

믿을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났다. 범죄 전력이 전혀 없는 평범한 19세 청년이 17세 여성을 성폭행하고 도망가려고 하자 목졸라 살해했다. 그리고는 16시간에 걸쳐서 화장실에서 시신을 훼손했다. 거의 뼈만 남기고 훼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소시오패스라는 말도 들린다.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가 반사회적인 사회적 정신장애라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면서 그 모든 게 사회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울분을 분출한 것이라는 말이다.

이 주장에 꽤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꼭 이 사건에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지만 얼마 전 TED에서 본 다음 강의가 문득 생각난다.

사형수들 변호만 쭉 해온 David은 대충 사건에 대해서 들으면 그 사형수의 일생을 시간순에 맞게 대략적으로 나열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말의 의미는 대부분 사형수들의 인생이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의 의뢰인이었던 ‘Will’의 인생을 예로 들면서 얘기를 풀어나가는 David은 담담하게 임신했을 때 떠나버린 아버지, 망상형 분열증을 앓고 있었던 어머니. 그리고 5살때 Will을 죽이겠다고 큰 정육점 칼을 들고 쫓아왔던 어머니와의 일화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David은 묻는다. 그에게 사형이 선고된 게 옳으냐고. 분명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David이 얘기한다. 하지만 그 얘기에 앞서서, 사형제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 누구도 부정 못할 얘기를 한다. 만약 Will이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거기에 이어 David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지금의 제도는 이미 일어난 사건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좀 더 빨리 사회가 개입한다면 그 끔찍한 비극을 훨씬 더 많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다. 왜냐면 그 사형수들의 인생에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깨어진 가정, 가정 내 폭력, 위탁 가정, 이른 범죄 등을 거쳐서 일어나는 살인이라는 비극 이전에 사회가 개입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좀 더 수월하게 풀어줄 수 있다면 그 비극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용인 사건과 같은 끔찍한 사건은 점점 더 수위가 높아지고, 연령은 어려지고, 빈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응축된 불만과 분노가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는 얘기이고,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교육적으로 자신의 발견과 행복의 정의에 대한 내용은 없고, 성적에 대한 압박만 있고, 경제적인 상황은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면서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어느 것 하나 좋을 게 없는 세상에서 분노와 울분이 축적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좋은 일 하자는 얘기만도 아니다. 결국 David도 경제적인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져서 얘기하는 것은 그런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범죄 예방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적다는 것이다. 단순히 복지의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 관리 차원에서 사전 예방에 대한 관점을 갖고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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