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사건과 세종의 조세 개혁

밀양 송전탑 사건이라는 뜨거운 감자(였으면 좋겠지만 이슈가 너무 많아서 묻히고 있네요;;;)를 어떻게 봐야 할 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미디어에 참 아쉬운 점은 사건의 현상만 다루고 그 본질에 대해서는 취약하다는 점이지요. (혹은 본질을 다루면 오히려 불리하니 안 하는 것일 수도;;;)

우선 가장 큰 핵심은 인체에 유해한가하는 문제인데 기준이 ‘단기간 고노출’의 기준 수치만을 내세우며 거기에 턱 없이 적은 양이라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주민들은 가까운 곳에서  ‘장기간 저노출’에 해당하는 조건이기 때문에 그 수치로 봐야 합니다. (*트랙백 글 참조.)

다음으로 서두르는 이유가 전력난 때문이라는 것인데 올해 밀양 이슈가 부각되자마자 각종 언론에서 블랙아웃, 전력대란 등의 기사가 쏟아져나왔습니다. 이렇게 부족한데 밀양이 주민 반대로 늦어지고 있다는 분위기 조성이었죠.

하지만 이것도 지금 당장 합의를 보고 시작해도 실제 전력은 2014년 하반기나 2015년이나 되어야 공급이 됩니다. 그 말은 굳이 합의 프로세스를 무리해가며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올해와 내년 여름에는 지금 있는 전력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이냐가 오히려 이슈입니다.

더군다나 신고리 3,4호기는 안전 테스트를 조작한 것이 밝혀지면서 올 12월로 예정되어 있던 가동이 늦춰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꼭 그래야 합니다.(*본 기사를 보면 그나마도 한수원에서는 문제가 없다며 한수원 사장이 강행할 의사를 밝혔지만)

정리하자면,

첫째, 인체에 무해하다는 기준은 단기간 노출일 때의 얘기이고, 거주민은 장기 노출이기 때문에 유해하다고 보는 게 맞다.

둘째, 당장 공사 들어가도 내년 하반기나 후내년이나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서두를 필요는 없고, 한두달 정도 합의 프로세스를 밟는 게 맞다.

셋째, 더군다나 직접적인 이유였던 신고리 3호기도 안전 테스트 위조 문제로 가동이 늦춰질 것으로 보이는데 성급한 결론을 내는 것보다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춰라.

조선 시대 만큼도 못한 행정 처리

문득 SNS를 중심으로 꾸준히 돌고 있는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허성도 교수의 강연 중에서 세종이 조세 개혁을 할 때의 일화가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너무나 와닿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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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백과사전 지봉유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우리 역사/문화를 한 가지씩 알려주는 이메일을 보내줍니다.

며칠 전에 받은 메일에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백과사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들어있었냐면 세계의 국가들을 소개하는 권에서는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의 동남아시아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포르투갈, 영국에 이르는 방대한 국가들에 대한 소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지적재산권의 개념이 없었던 때이지만 각 정보들의 출처들도 밝혀두어 원문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답니다. 남의 지식을 뺏을 수 없었던 선비로서의 양심 때문이었을까요?

아무튼 저는 정규 교육과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가끔씩 이런 글들을 보면서 도대체 학교의 역사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배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로부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가가 힘들 때 힘을 쏟는 것 중의 하나는 역사책을 발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해 자국민의 긍지를 일으키고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죠.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떤 역사를 가르치고 있을까요? 이제 더 이상 역사가 필수 과목도 아닌 지금 우리나라를 일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더욱 많은 역사학자, 한학자들이 나와서 이런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도 알려주고, 아직까지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수 많은 책들을 번역해 수백년이 지난 지금 그 책들을 다 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서양에서는 수백년 전의 책들이 모두 현대어로 정확히 번역되어 읽혀지는데 우리는 아직 조선왕조실록 조차도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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