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요즘 시간이 날 때 하는 앱이 있습니다. ‘왓챠’라고 영화를 평가하고 그를 기반으로 자신에게 맞는 영화 및 예상 평점을 추천해주는 앱이에요. 아직 안 해보신 분들은 한번 해보세요. 내가 이런 영화들을 봤구나 하는 추억도 떠오르고, 아 맞다 이 영화 보려고 했었는데 하는 기억도 떠오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ㅎㅎㅎ

그렇게 봐야지 했지만 못 봤던 영화 중에는 ‘아메리칸 히스토리 X’가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혹은 잡지에서 추천을 봤지만 봐야지 해놓고 못 봤던 영화였는데 휴식을 테마로 한 이번 휴가에 결국 보게 되었네요.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떠오른 게 있습니다. (스포 포함)

1. 데릭과 일베의 공통점

주인공 ‘데릭’은 평범한 소방관의 아들로 공부를 열심히 하던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아버지가 근무 중 총에 맞아 죽으면서 극렬 인종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여기는 아주 평화롭고 좋은 곳이었는데 자꾸 불법이민자를 포함한 다른 인종 사람들이 오면서 자기들의 일자리도 뺏기고, 그들은 기존에 백인이 하던 가게들을 사서는 불법이민자를 고용하고 돈을 쓸어가고 있다며 분노합니다. 그리고는 캐머론이라는 백인우월주의자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분노한 젊은 백인 청년들의 리더가 됩니다.

영화의 여러 대목을 통해서 그러한 현상의 원인 및 배경에 대한 분석이 나옵니다. 데릭의 동생 대니의 시각이나, 스위니 박사의 시각이나, 데릭의 시각에서, 그리고 역사 선생의 시각 등에서 그러한 얘기가 나옵니다만 원래 사회적으로 데릭을 포함한 백인들이 가지고 있던 분노가 표출될 대상을 못 찾고 있다가 분출됐다는 분석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갈피를 못 참고 있는 사회적 분노가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사회적 장치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만 대부분 그런 지각은 없이 일단 분노하고 있죠. 일베는 그러한 분노가 교묘히 합쳐지고 방향을 광주, 여성 및 진보 등을 향해 응축된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계속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데요. 조만간 한국에도 이런 움직임이 나리라고 봅니다. 일본의 혐한 시위가 결코 남의 일은 아닐 겁니다. 한국에서 혐중 시위가 날 수도 있지요. 지금은 일베가 그래도 같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대놓고 큰 활동을 하지 못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분명히 강한 애국심의 뒤틀린 투사가 되어서 큰 운동으로 작용할 겁니다. 최근에 보여준 월드컵 붉은악마 및 촛불시위 못지 않은 거대한 움직임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겠죠.

2. 중요한 기준: 그 행동으로 니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니? 

스위니 박사가 수감 중인 데릭을 찾아갑니다. 이미 데릭은 자기가 믿어왔듯이 흑인이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데릭이 도와 달라고 하자 스위니 박사는 중요한 대사를 던집니다. 자신도 겪어봐서 안다며 질문 합니다. “니가 했던 그 행동들을 통해 니 인생이 나아졌니?” 데릭은 이어서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는 걸 느끼죠. 그리고 출감 후 자신의 뒤를 이어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어 있는 동생 대니를 만나서도 같은 얘길 합니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고, 모든 게 엉망이 됐을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현상과 원인과 대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잘 하지만 현실에서는 헤메고는 하지요. 마치 데릭처럼 엉뚱한 곳에 분노를 표출하고는 합니다. 왜 자신이 분노해 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화낼 곳과 고쳐야 할 곳이 분명해 지니까요. 그런 것들이 교육을 통해 커버되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진학반일 뿐이고, 대학은 취업준비반일 뿐이라 그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3. 마을의 변화 및 사회의 변화

역사 선생의 숙제에 ‘나의 투쟁(히틀러의 자서전)’의 독후감을 낸 대니에게 스위니 교장이 내린 처벌은 자기 형의 일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현 시대 미국의 사회, 문화적인 내용과 자신, 가족 등에 미친 영향 등 있는 대로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처음 그 동네는 아주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다 조금씩 흑인들과 이주민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인종 간 문제가 터지게 된 거죠. 과연 살기 어려운 그 문제의 원인은 그 이주민들일까요?

이주민들이 오던 시대는 아마도 1970년대에서 80년대였을 겁니다. 미국의 번영기였죠. 그 뒤로 조금씩 미국 경제는 흔들려가고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에는 아주 혼란스러웠죠. 2000년대 들어서는 온갖 고름이 터져 나왔고요. 아마도 경기가 어렵고 살기가 어려워진 것에 대해 나는 내 이웃은 똑같이 열심히 사는데 뭐가 이리 살기 어려울까를 생각하다가 저 놈들이 여기 오면서 마을이 그렇게 됐어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옛날엔 살기 좋았는데 하는 어르신들이 있죠. 그리고 요즘은 왜 그런가에 대해서 다른 원인을 찾고 계신 분들이 있고요.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도 같은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죠. 데릭 가족의 일화를 보면 마치 요즘의 한국 사회 상황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 한국에서는 과연 어떤 양상을 나타내게 될까요? 부디 선제적으로 사회적 이슈들을 미리 짚어내고 해결해내는 훌륭한 큰 그릇이 나타나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