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대교 사건이 떠올린 기억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어제 갑자기 방화대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상판이 붕괴되었단 소식이 들렸고, 증축 공사 현장이라는 추가 정보가 돌았고, 크레인이 넘어졌다는 소식도 들렸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인지 궁금해서 검색하다 보니 성수대교 사건이 나왔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사건도 같이 검색되어 나왔다. 잊지 못할 그 사건들. 당시에 뉴스 속보로, 특집 방송으로 보았지만 어렸을 때라 다시 한번 찾아보았다. 익숙한 영상클립과 함께 나온 뉴스와 자료들에서는 어렸을 땐 안 보였던 점들이 보였다. 얼마나 한심한 사고였는 지, 얼마나 안타까운 사고였는 지 그리고 그것들을 둘러싼 사회의 병폐였다.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은 점, 사고가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대책을 세운 점, 세분화되고 복잡한 구조 속에서 서로 책임을 떠 넘긴 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다가 발생한 점, 관련자 처벌이 확실히 되지 않은 점 등은 공통적이다. 얼마 전 노량진 사고까지도 이어지는 이런 공통적인 분모들은 왜 미리 막지 못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성수대교 사건 동영상들

삼풍백화점 사건 정보들

성재기의 죽음, 남성연대 그리고 여성부

남성연대를 만든 성재기 대표의 죽음은 여러 가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다. 그 죽음이 자살이든 사고든, 그가 했던 행동과 말들이 옳았든 그릇된 것이었든 여부와 상관없이 그가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고 그것과 관련해 다양한 이슈를 만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에 대한 평가가 갈리고 있다. 역차별에 맞선 영웅으로 비치기도하고, 무모하게 자기만의 생각을 따랐던 돈키호테로 묘사하기도 하고,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가진 사기꾼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난 평가하고 싶지 않다. 그 평가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남긴 어록과 이슈들을 보자.

그의 어록

논란이 되었던 위안부 발언

고려대 성폭행 사건 무죄 주장

그의 주장들은 모두 남성적이다. 철저히 남성의 입장에서 항변하고 있다. 남성을 여성을 억압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하고, 여성을 위해 무조건 배려해야 하는 것을 미덕으로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항변이다. 지나치게 편향적이고, 어떤 부분은 비논리적인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게 옳은 지 그른 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의 발언 하나하나에 상당히 많은 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열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현상의 근원에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지만 여성부가 가장 중요한 트리거 포인트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부가 생겨난 이후 보여온 다양한 행보를 보면 과연 여성 행복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 남성의 하락을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나는 진정으로 여성이 다양한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지 감시하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거나 정부가 권고해서 제공해야 하는 다양한 혜택들이 사회적으로 사실상 제공되지 않는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결혼을 했다고, 사내 연애를 했다고, 임신을 했다고 해고되거나, 계약 조건이 바뀌거나, 부당한 처사를 받는 얘기를 대기업/중소기업 상관없이 많이 듣는다. 회사 분위기 상 법적으로 제공되어 있는 출산 휴가를 쓰지 못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특정 직급 이상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그래서 여성부처럼 별도 부처의 형태이든 다른 부처 내의 조직이든 그런 것들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찰, 아청법 적절성 논란 등 다양한 부분에서 여성부 본연의 핵심 업무보다 다른 곳에 헛심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이런 부차적이어야 할 이슈들에 상당한 힘을 쏟을 뿐 아니라 남성들과 각을 세우고, 깎아내리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줬다.

그런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그 동안 여성부는 그 사회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철폐 운동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조롱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시점에서의 남성연대 등장은 우연이라기 보다 사회적 필연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성재기 대표에 대해, 남성연대에 대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 맥락 상에서 봤을 때 큰 줄기를 바로 잡는 게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오늘의 여성은 과연 여성 그 자체로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사회적으로 충분히 대우받고 있는가? 이런 아젠다야 말로 여성부가 진심을 다해 대면해야 할 아젠다 들이다.

단순히 노래 가사말이 약간 성적인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방송 금지 신청하고 19금 때릴 것이 아니라 아래 TED 영상에서처럼 과연 여성이 어떻게 사회에서 인식되고 있고 그게 은연 중에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 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근원적인 관점에서 여성 문제를 접근하고, 도브의 ‘Real Beauty’ 캠페인처럼 이미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부터 재정립하는 것이 중요한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우연히 몇년만에 음악방송하는 것을 봤는데 그 옷 차림새, 댄스 형태 등에 정말 깜짝 놀랐다. 과연 가사에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가사가 성적인 행위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음악 방송에서의 그런 모습보다 더 유해할까?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광고에서 강요하고 있는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일까? 사회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아름다움을 맞추기 위해 건강을 해쳐가면서 살을 빼고, 무리하게 수술을 하는 이 현실이야말로 여성부가 당장 노력해야 할 책임이고 임무다. 이 사회에서 여성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딸기찹쌀떡 공방, 과연 그 진실은?

시사매거진 2580에서 딸기찹쌀떡의 눈물이 방송되면서 딸기찹쌀떡(혹은 딸기모찌) 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본 이슈는 크게 3단계에 걸쳐서 진행이 됐다.

– 1차 이슈(6/28 경): 김민수 씨의 글 확산

– 2차 이슈: 안홍성 대표 반박글(7/3) 및 대웅홀딩스 반박 글(7/2) 확산

– 3차 이슈: 시사매거진 2580 방송 (7/28)

자세한 사항들은 위의 글을 보면 알 수 있으니 생략하고 나의 개인적인 판단을 토대로 이슈를 풀어보려고 한다.

1차 이슈가 발발했던 6월 28일 경 SNS에 공유된 저 글을 보고 순간 욱했으나 별도로 공유까진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인데 온라인 관련 일을 하면서 생긴 조심성이다. 온라인에서는 이슈가 한번 불 붙으면 겉잡을 수 없는데 그때 휩쓸리면 이성을 잃기 쉽다. 예전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과 같이 초반에 글 올린 이의 의견만 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진실이 밝혀지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채선당 논란이 터졌을 때도 적극적으로 공유를 하지 않았는데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적으로 너무 이상할 경우에는 일단 양쪽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그 글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호소하고 있다면 더욱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며칠 후 2차 이슈가 터졌다. 반박글이 나온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역시 양쪽 의견이 너무나 달랐다. 게다가 양쪽 다 서로가 진실이라며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양쪽 모두 정확한 팩트를 근거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중간 중간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하는 등의 얘기가 있지만 그게 결정적인 내용은 아니다.

김민수 씨는 공동 대표인 안홍성 대표가 대기업과 결탁해 횡포로 내가 어렵게 획득한 달인 기술 및 아이템을 뺏으려 한다는 것이고, 안홍성 대표는 오히려 자신의 선의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면서 김민수 씨가 불쌍해 기술도 가르쳐주고 했더니만 적반하장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고, 대웅홀딩스는 자기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구체적인 문서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상황이라 개인적으로는 양쪽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거나 틀어지는 바람에 일어난 개인간의 분쟁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제 시사매거진 2580에 찹쌀떡의 진실이 방영되면서 다시 논란에 불이 붙었다. 방송이 되자마자 기존에 몰랐던 사람들까지 분노하기 시작했고 방송에서는 김민수 씨의 의견이 중심이 되어 방송이 됐다.

드러난 내용 만으로는 결코 진실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법적 공방을 통해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지리라고 생각되는데 이 정도까지 여론이 형성된 바 사법부에서 대충 결론내기는 어려울 테고 꼼꼼히 보리라고 생각한다.

방송까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후속 기사에서는 안 씨와 김 씨가 갑과 을로 하여 작성된 계약서까지 등장했다.

from 이투데이

이를 기자는 안 씨가 말한 대로 당시에 김 씨를 처음 본 것이고 불쌍해서 가르쳐준 것이라면 당연히 안 씨에게 유리하게 작성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왜 계약서 상으로 보면 김 씨가 더 유리해 보이도록 되어 있냐고 반문한다. 그를 토대로 당시에 안 씨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김 씨의 의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된다. 계약서가 명백하게 있고, 그 계약서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는데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호소하고 다니는지 말이다.

현재까지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갑인 안 대표의 일방적인 횡포일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오히려 법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 같고, 만약 안 씨와 김 씨의 상호간의 이익 대립으로 인한 법적 분쟁이라면 법적인 대립도 심하고, 법적 결론과 여론의 결론이 서로 다르게 나면서 다시 한번 재논란의 불을 지피는 등 좀 더 복잡하게 전개될 것 같다.

후쿠시마의 전철을 밟고 있는 한국

독일 국영방송(ZDF)에서 제작해 2012년 3월에 방영한 ‘후쿠시마의 거짓말’이 SNS를 통해 돌고 있다.

이른바 원자력 패거리들이 권력을 장악해 그 동안 각종 부실, 고장, 위험 등을 은폐해왔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에 수상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별도로 일을 처리할 만큼 오만한 권력으로 군림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안전하게 정리되었다는 주장도 날조되었을 가능성을 짚고 있다. 향후 지진을 한번 더 올 경우 전 지구적인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적인 이슈 차원에서 후쿠시마가 관리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 같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주변 국가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도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의 정부와 함께 대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스스로의 점검을 할 때가 되었다. 원전의 부실한 자재 관리, 그와 관련된 비리, 안전 검사 마저도 날조한 한수원 및 협력 업체 등 그 어느 것 하나 도쿄전력과 다를 바 없다.

고리, 월성 등 각종 원전은 매년 수시로 각종 고장 또는 고장 위험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있어왔다. 그때마다 별 것 아니라고 해왔지만 실제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도쿄전력의 선례로 볼 때 원자력은 특정 기관이 감독할 대상이 아니다.

문제가 일어나면 그것은 전 국가적, 전 지구적 이슈가 되기 때문에 이를테면 한수원 전문가, 학계 전문가, 시민 단체, 국제적 권위를 가진 단체 등이 모두 함께 감독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당장 타 국가의 전문가, 시민 단체 등이 모두 함께 투입되어 제대로 감독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후쿠시마의 뒤를 이을 수 있다. 사실 피해는 더 클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고리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 비해서 도심과 더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대략 50km 반경에 부산, 울산, 창원, 김해 등 큰 도시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인적, 물적 피해가 엄청날 수 밖에 없고, 더 넓게 보면 대구, 경주, 포항, 통영/거제 등 까지도 영향을 미칠 거다. 일시적인 피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감안하면 국토가 그리 넓지 않은 한국으로서는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from wikipedia

지금 한국은 도쿄전력이 사고 이전에 보여줬던 전철들을 밟고 있다. 지금이라도 재빨리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서 사고 예방 및 사고 시 대책을 미리 논의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일본에 대한 후쿠시마 관리 감독도 글로벌 여론을 형성해서 제대로 사고 처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 확인하고 필요한 부분은 원조를 해야 할 것이다.

[참고 1.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이해 영상 by IRSN(프랑스 원자력안전방사선방호연구소)]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MaEjEWL6PU

[참고 2.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엔하위키]

[참고 3. 체르노빌 원전 사고 엔하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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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 7월 25일 기사에 따르면 18일, 23일에 이어 25일에도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수증기와 비슷한 물질이 새어 나오는 것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도쿄전력은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지만 일본의 한 민영방송에서 측정한 결과 사고 후 2개월 후와 같은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밝혀 또 다른 위험을 은폐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되네요.

고물상 죽이기를 통해 본 정부의 시각

오늘 자 한겨레 기사이다.

요약하면 환경부가 폐기물 관리법을 개정했는데 그 동안 고물상에서 취급하던 것들을 다 재활용품이 아닌 폐기물로 규정하고, 다른 폐기물처럼 쓰레기, 분뇨 등을 처리할 수 있는 땅의 용도인 잡종지에만 입지하도록 하는 법이 오늘 24일 부로 시행된다는 것이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이 이를 4년 더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6월 임시국회 파행으로 처리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개정의 배경에는 고물상에 대한 정부의 이런 인식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첫째, 가뜩이나 부동산 경기가 안 좋은데 동네마다 있는 고물상들이 주변 땅값을 잡고 있으니 이를 없애고 땅값 올리기를 하겠다. 둘째, 겉보기에도 너저분하고 좋지 않은데 환경 미화와 보건 위생적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다. 셋째, 고물상 때문에 들어오는 민원 처리하는 것도 귀찮고 힘든데 차라리 주거지와 분리하는게 모두가 편하겠다.

하지만 정부가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져 살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고물상은 단순히 쓰레기장이 아니다. 그곳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국민들이 하루 한끼 먹는 식사비를 버는 곳이고, 더 이상 다른 생계수단을 찾을 수 없는 분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와도 같은 곳이다. 만약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어떻게 이런 정책을 내놓을 수가 있나.

그리고 사실상 공식적으로 처리 비용을 지불하고 내놓지 않은 다양한 재활용품 및 폐기물들이 고물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지역의 미화 차원에서도 그리 마이너스 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책상 위에서만 군림하는 정부가 될 것이 아니라 같이 내려와서 생활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첫 번째 대안은 만약 뺄 것이라면 그에 대한 관련 고령 저소득 주민들에 대한 생계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직접적으로 지원을 해주거나, 예전처럼 해당 주민들이 주변에 모은 폐기물을 갖다 낼 수 있도록 구청이나 주민센터, 유휴지 등을 지정해주고 거기서 옮겨진 고물상이 수거해 갈 수 있도록 하고 운송비를 지원해주는 등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대안은 단순히 문제가 된다고 무작정 밖으로 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물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의 고물상의 모습이 아니라 폐기물 처리 규정, 고물상의 환경 및 보건에 대한 규정 등을 강화해서 인상이 찌그러지는 공간이 아닌 재활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해당 업계 및 도시환경 전문가와 시간을 갖고 대안을 모색해보는 방법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점점 사회 계층간의 교류가 없어지고 있다. 전후 세대에서는 다들 어린 시절 힘들었지만 크면서 살림 살이가 나아진 사람들이었다면 지금은 어려서부터 풍족해서 그대로 큰 사람들이 많다.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려면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부러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결코 그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의 간부들, 정치인들 등이 낮은 시각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는 공감 능력을 갖길 바란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이제 인문학의 발전에 달려있다

에스티마 님의 구글 글래스 리뷰를 보고 떠오르는 내용이 있었다. 계속해서 생각하는 내용인데 이제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당분간 정체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너무 단정적으로 전체에 대해 얘기했나 싶기도 한데 굳이 특정 짓자면 인간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 있어서 말이다.

그 이유인 즉슨 과학과 기술이 무한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것에 비해서 비교적 더디게 발전하고 있다. 위의 구글 글래스 리뷰에서 나타났던 것처럼 음성 인식은 꽤 오래 전부터 나왔지만 생각보다 빨리 누구나 대화하듯이 명령하고 알아듣는 시스템은 나오지 않고 있다. 사람이 정해진 대로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분석이 깊이 이루어져야만 컴퓨터와의 대화도 가능해질 것이다.

소셜 콘텐츠 분석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남긴 글을 긍정적인 내용인지, 부정적인 내용인지, 비꼬는 건지, 진심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언어학적인 깊은 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네트워크와 연결되고 있다. 얼마 전 회사로 초청된 파워블로거 우주 님의 특강을 듣다가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열쇠가 필요없는 문이 등장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문 앞에 가면 ‘주인님이구나’ 하고 알도록 말이다.

그런데 나를 인식하게 하는 건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첫번째로 떠오른 건 얼굴이었다. 카메라로 나를 인식하려면 나의 각종 얼굴 각도에 따른 DB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간대별로 각종 주변 밝기에 따라, 머리 길이에 따라 변화하는 내 얼굴을 모두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얼굴이 붓더라도, 술이 마셔서 벌겋더라도, 기분의 변화에 따른 표정 변화가 있더라도 모두 알아봐야 한다. 그 모든 DB가 있거나 혹은 그것을 감안해서 추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OMG!

도저히 얼굴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도 부차적으로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해서 보완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람의 목소리 또한 고유의 파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술에 취해서, 감기에 걸려서, 목이 쉬어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된다. 이런…

이쯤에서 난 사람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을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수많은 DB를 뇌 속에 저장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있다가도 우리는 30미터 앞에서 슬쩍 지나가는 누군가의 뒷머리 일부만 보고도 ‘어? 누구 같은데?’라는 것을 알아낼 정도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언어, 우리의 인식 체계 등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결국 과학과 기술이 끊임해서 발전하고 있고 각종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가 인간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발전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 동안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매료되어 인류가 인문학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 인문학이야 말로 그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반바지가 아니면 치마를 달라

여름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란과 함께 아열대기후로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쿨맵시’가 일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의 드레스코드인 답답한 정장에서 벗어나자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체온을 높게 유지시키는 정장을 벗고 실내 냉방을 줄여 환경도, 비용도 아끼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올해 환경부가 제시한 쿨맵시를 따져볼 때 십년 전부터 나온 노타이 패션, 쿨 비즈 룩 등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특히 남성들에게 반바지를 허용할 것이냐의 문제는 점점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냉방 제한이 이루어지고 여름철 적정 실내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면서 남성들이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 남녀 모두 같은 반팔을 입고 있지만 아래는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은 긴 바지를 입고, 여성은 스커트를 입는다. 같은 실내 온도라도 체감온도는 크게 다르다.

‘쿨맵시’의 기본은 시원하게 입어서 실내 온도를 높이자는 취지이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짧다거나 비즈니스 상의 매너를 벗어나지 말자는 의미에서 각종 드레스코드 가이드라인도 나오고 있다. 예전처럼 남자가 반바지를 입으면 체신머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일상 생활에서는 여름에 반바지 입는 사람이 긴바지 입는 사람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한때 반팔 셔츠가 매너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가 일반화 된 것처럼 반바지의 성격도 다시 고려될 때가 됐다.

이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스웨던 철도 ‘아리바’사에서도 남성에게 반바지를 금지하고 긴 바지 아니면 스커트만 허용하자 이에 기관사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치마를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결국 치마 시위가 성공했다. 회사는 반바지를 허용한 것이다.

반바지 금지 정책에 항의하는 기관사들 from wikitree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영국 카디프의 위트처치(Whitchurch) 고교 남학생 17명이 여학생은 반바지 혹은 치마를 선택할 수 있는 반면, 남학생은 긴 바지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것에 반발해 치마를 입고 등교했다고 합니다. 이들도 과연 스웨덴 기관사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까요? 

치마를 입고 등교한 학생들 from wikitree

세계적으로 반바지의 공식화에 대한 재고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여론이 일어나 시원한 여름을 맞이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봅니다.

배부르고 무책임한 국회의원은 누가 만들었나?

Zariski 님의 블로그 글 ‘국가별 국회의원 연봉과 1인당 GDP의 비율(2013)’을 읽고 든 생각이 있어서 쓴다.

Zariski 님의 글 ‘국가별 국회의원 연봉과 1인당 GDP의 비율(2013)’에서 본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차트

1인당 GDP 대비 국회의원 연봉이 높은 1위~10위 국가를 보면 대체로 정치적 수준이 낮은 국가들이다. 반대로 뒤에서 보면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정치 선진국이 많다는 게 재밌다. 흔히 정치 수준을 얘기할 때 정치인들의 수준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지만 그보다 국민이 정치인들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는 가를 놓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유명한 EBS 지식채널 동영상 하나. ‘어떤 임시직’

참 부럽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의 차이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이 가진 정치에 대한 신념, 국가에 대한 정체성,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식 등 많은 면에서 수준이 올라가서 정치인들에게 변화를 촉구해야만 한다. 그때 그때 정치인과 언론에서 띄우는 주제에만 반응하고 자기만의 관심사 및 관점이 없이는 결코 바꿀 수 없다.

먼저 국민이 주제를 끌고 가서 정치인들을 묶어놔야한다. 감시하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특히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 지식인들이 그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일반인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 관점이나 지식을 쉽게 풀어서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눈을 크게 뜨자.

[영화]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요즘 시간이 날 때 하는 앱이 있습니다. ‘왓챠’라고 영화를 평가하고 그를 기반으로 자신에게 맞는 영화 및 예상 평점을 추천해주는 앱이에요. 아직 안 해보신 분들은 한번 해보세요. 내가 이런 영화들을 봤구나 하는 추억도 떠오르고, 아 맞다 이 영화 보려고 했었는데 하는 기억도 떠오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ㅎㅎㅎ

그렇게 봐야지 했지만 못 봤던 영화 중에는 ‘아메리칸 히스토리 X’가 있었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혹은 잡지에서 추천을 봤지만 봐야지 해놓고 못 봤던 영화였는데 휴식을 테마로 한 이번 휴가에 결국 보게 되었네요.

영화를 보면서 몇 가지 떠오른 게 있습니다. (스포 포함)

1. 데릭과 일베의 공통점

주인공 ‘데릭’은 평범한 소방관의 아들로 공부를 열심히 하던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아버지가 근무 중 총에 맞아 죽으면서 극렬 인종주의자가 됩니다. 그러면서 여기는 아주 평화롭고 좋은 곳이었는데 자꾸 불법이민자를 포함한 다른 인종 사람들이 오면서 자기들의 일자리도 뺏기고, 그들은 기존에 백인이 하던 가게들을 사서는 불법이민자를 고용하고 돈을 쓸어가고 있다며 분노합니다. 그리고는 캐머론이라는 백인우월주의자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분노한 젊은 백인 청년들의 리더가 됩니다.

영화의 여러 대목을 통해서 그러한 현상의 원인 및 배경에 대한 분석이 나옵니다. 데릭의 동생 대니의 시각이나, 스위니 박사의 시각이나, 데릭의 시각에서, 그리고 역사 선생의 시각 등에서 그러한 얘기가 나옵니다만 원래 사회적으로 데릭을 포함한 백인들이 가지고 있던 분노가 표출될 대상을 못 찾고 있다가 분출됐다는 분석이 핵심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갈피를 못 참고 있는 사회적 분노가 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사회적 장치가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만 대부분 그런 지각은 없이 일단 분노하고 있죠. 일베는 그러한 분노가 교묘히 합쳐지고 방향을 광주, 여성 및 진보 등을 향해 응축된 커뮤니티라는 생각이 들고요.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채 계속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데요. 조만간 한국에도 이런 움직임이 나리라고 봅니다. 일본의 혐한 시위가 결코 남의 일은 아닐 겁니다. 한국에서 혐중 시위가 날 수도 있지요. 지금은 일베가 그래도 같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대놓고 큰 활동을 하지 못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분명히 강한 애국심의 뒤틀린 투사가 되어서 큰 운동으로 작용할 겁니다. 최근에 보여준 월드컵 붉은악마 및 촛불시위 못지 않은 거대한 움직임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겠죠.

2. 중요한 기준: 그 행동으로 니 인생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니? 

스위니 박사가 수감 중인 데릭을 찾아갑니다. 이미 데릭은 자기가 믿어왔듯이 흑인이 악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데릭이 도와 달라고 하자 스위니 박사는 중요한 대사를 던집니다. 자신도 겪어봐서 안다며 질문 합니다. “니가 했던 그 행동들을 통해 니 인생이 나아졌니?” 데릭은 이어서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는 걸 느끼죠. 그리고 출감 후 자신의 뒤를 이어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어 있는 동생 대니를 만나서도 같은 얘길 합니다. 조금도 나아진 게 없다고, 모든 게 엉망이 됐을 뿐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현상과 원인과 대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잘 하지만 현실에서는 헤메고는 하지요. 마치 데릭처럼 엉뚱한 곳에 분노를 표출하고는 합니다. 왜 자신이 분노해 있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화낼 곳과 고쳐야 할 곳이 분명해 지니까요. 그런 것들이 교육을 통해 커버되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진학반일 뿐이고, 대학은 취업준비반일 뿐이라 그 어떤 것도 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3. 마을의 변화 및 사회의 변화

역사 선생의 숙제에 ‘나의 투쟁(히틀러의 자서전)’의 독후감을 낸 대니에게 스위니 교장이 내린 처벌은 자기 형의 일에 대해서 자신이 아는 현 시대 미국의 사회, 문화적인 내용과 자신, 가족 등에 미친 영향 등 있는 대로 써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처음 그 동네는 아주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다 조금씩 흑인들과 이주민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조금씩 문제가 생기고 인종 간 문제가 터지게 된 거죠. 과연 살기 어려운 그 문제의 원인은 그 이주민들일까요?

이주민들이 오던 시대는 아마도 1970년대에서 80년대였을 겁니다. 미국의 번영기였죠. 그 뒤로 조금씩 미국 경제는 흔들려가고 있었습니다. 90년대 후반부에는 아주 혼란스러웠죠. 2000년대 들어서는 온갖 고름이 터져 나왔고요. 아마도 경기가 어렵고 살기가 어려워진 것에 대해 나는 내 이웃은 똑같이 열심히 사는데 뭐가 이리 살기 어려울까를 생각하다가 저 놈들이 여기 오면서 마을이 그렇게 됐어 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현재 옛날엔 살기 좋았는데 하는 어르신들이 있죠. 그리고 요즘은 왜 그런가에 대해서 다른 원인을 찾고 계신 분들이 있고요.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도 같은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비정상적으로 집착하죠. 데릭 가족의 일화를 보면 마치 요즘의 한국 사회 상황을 보는 것 같습니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아메리칸 히스토리 X. 한국에서는 과연 어떤 양상을 나타내게 될까요? 부디 선제적으로 사회적 이슈들을 미리 짚어내고 해결해내는 훌륭한 큰 그릇이 나타나주길 바랍니다.

컴퓨터의 미래는?

몇년 전 클라우드라는 개념이 IT업계를 강타하면서 개개인이 가진 컴퓨터의 성능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사실상 매개체가 되는 컴퓨터가 있기만 하고, 네트워크에만 접속이 된다면 나머지는 클라우드에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장이든 정보처리든 프로그램 실행이든 뭐든 간에 개념적으로는 클라우드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 3년 전 컴퓨터 관련 광고주 PR 어카운트를 맡고 있을 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컴퓨터 업계는 점점 더 힘들어지겠구나. 기자들을 만나고, IT 리뷰어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봐도 싱글 코어에서 듀얼 코어로 갔을 때 만큼의 임팩트가 그 이후로는 없다는 거였다. 사실상 헥사코어든 뭐든 전보다 빠르다 이거지 실제로 성능에서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반도체 공정 상의 수율 문제로 생산성의 이슈도 있고, 컴퓨팅 관련 업계에서는 혁신의 벽에 부딛힌 상황이었다. 소프트웨어 쪽은 승승장구, 날고 뛰고 있는데 하드웨어 쪽은 영 이렇다할 성과가 몇년 째 없었다. 실제로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5년에서 10년째 같은 컴퓨터를 쓰고 있고, 별 어려움 없다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의 등장은 하드웨어 쪽에 큰 타격을 주었고 뒤 이어 모바일 시장의 빅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점점 컴퓨터를 켜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굳이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검색할 수 있고, 쇼핑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을 뿐더러 훨씬 접근하기 빠르고, 훨씬 편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가상 클라우드에, 모바일에 뺏기고 있다. 각자 살 길을 모색 중이다. 프로세서 업계에서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태블릿에 최적화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고, 컴퓨터 생산업체에서는 태블릿 PC와 같은 개념으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이고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기에는 어느 업계에서 내놓든 상관없고 결국은 들고 다니기 편한 태블릿과 PC가 결합된 형태로 컴퓨터가 정리될 것 같다.

여기에는 한 가지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Entertainment이다. 왜냐면 인간의 욕심은 점점 가상 현실을 실제처럼 하려고 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것에 익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온 배틀필드 4 홍보 영상을 보면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게임은 이제 점점 현실을 따라잡고 있다. 나뭇잎 하나하나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맞게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기상 환경에 맞게 하늘의 구름이 변화하고, 바닷물이 움직인다. 눈동자가 광원과 내 위치에 따라 다르게 빛을 반사하고 실제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더욱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말이다.

이런 정도의 현실적인 움직임을 위해서는 엄청난 물리엔진이 돌아가야 하는데 필요한 사양이 높다. 온라인 게임도 최소한의 기본 사양을 높게 잡고 만들면 가능하지만 모든 것은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격과 판매에 달려 있는 법이다. 사양을 올릴 수록 팔 수 있는 시장이 좁아지고 그러려면 게임에 가격을 붙여야 하고, 사양을 높게 잡을 수록 비싸지고 좁은 시장에 비싸게 팔아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게 온라인 게임이다.그래서 일반적으로  게임의 리얼리티는 콘솔 게임이 더 높은 이유가 그런 데 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생각하기 컴퓨터가 가진 다양한 기능 중 서핑, 온라인 쇼핑 등 일상적인 기능은 모바일 기기가 흡수하고,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기능한 콘솔 게임기와 별도의 DVD/블루레이 플레이어 등이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중기적으로 콘솔게임기와 멀티미디어 플레이어가 지금보다 더 극적으로 합쳐지고, 장기적으로는 모든 게 하나로 해결할 수 있도록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가진 모바일 기기 만으로도 고사양의 게임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서 돌아가고 주변에 있는 어떤 디스플레이를 활용해서 보면서 즐길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그런 환경이 온다면 아마도 수익 모델은 하드웨어의 판매에 있는 게 아니라 클라우드의 사용 비용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콘텐츠 제공 및 클라우드 제공에 따른 과금 방식으로 돈을 벌게 되지 않을까? 지금 제조업 기반의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이 잘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